2009年8月19日水曜日

釜山日報2009年8月「時論」

[부일시론] 새로운 패러다임의 광복절
/ 마쓰바라 다카토시 일본 규슈대 한국연구센터 교수

8월 15일은 한국에서는 '광복절'이며 일본에서는 '패전 기념일'이다.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은 어떻게 보면 동전의 앞뒤면과 같은 운명이라 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1945년도의 하카타항(후쿠오카항의 별칭)과 부산항의 모습을 들 수 있다. 1945년부터 몇 년간 일본 등에서 모국으로 귀환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하카타항을 통해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한반도에서 귀환하는 일본인은 부산항을 통해 하카타항으로 들어왔다.부산항은 '희망의 항구'당시 한국인 귀환자들에게 신국가 건설의 관문 역할을 한 부산항은 '희망의 항구'였다. 반면 일본 귀환자들에게 부산항은 폐허의 국가로 향하는 '절망의 항구'였던 것이다.1980년대에도 일본에 한류 붐이 있었다. 조용필, 이성애 등이 부른 한국 대중 가요를 많은 일본인이 애창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당시 히트곡 중의 하나였다. 부산항을 소재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별한 남녀의 러브 스토리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부산항은 '사랑의 항구'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하카타항과 부산항을 연결하는 고속선 '비틀'이 취항함으로써 쇼핑과 먹을거리, 미용을 즐기려는 일본인들이 드나드는 부산항은 '관광의 항구'가 되었다.여기서 한 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창도 전 부산시립도서관장이다. 부산은 한국에서 최초로 공립도서관이 설립된 곳이다. 한일합방 이전의 자료를 포함해 일본어로 기록된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로 접어든 지금은 모든 도서관 자료의 공개가 당연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인이 한국 도서관에 소장된 일본어 자료를 관람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설마'라고 생각되겠지만 강한 반일 감정이 빚어 낸 결과였다.더구나 소장 자료 조사팀에 일본인을 합류시키는 일은 서울대학교, 한국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전례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문 관장은 지금까지 일본인 연구자들에게 봉쇄해 오던 자료를 전부 공개하고 소장 목록을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비록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유산일지라도 책은 인류 공통의 재산이다'라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국 국민에게 있어 '패러다임의 전환기'였다고 생각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세계 무대에 선 한국 국민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점차 '반일감정'만으로 무장된 사고 방식에도 변화를 초래했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사실과 징병제, 창씨개명, 토지수탈 등의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 하나하나의 사실의 전모를 해명하고 두 번 다시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현명한 방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역사적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실마리는 무엇인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월 15일은 '광복절'(한국)이자 '패전기념일'(일본)이다. 이 날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켜 양국이 '세계평화 공존 선언'같은 것을 도출해 세계에 강하게 어필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한국과 일본 '세계평화 공존 선언'을만약 정부 차원에서 무리가 있다면 2009년 부산시와 후쿠오카시가 우정의 해를 제정한 예가 있듯이, 부산시와 후쿠오카시가 '세계평화 공존 선언'을 먼저 선포하는 것은 어떨까? 또는 부산시와 후쿠오카시가 제안해 이미 100개 이상 맺어져 있는 한일 자매도시 간 네트워크를 연합해서 한일 양 국민에게 어필하는 것은 어떨까?그 전례로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를 들 수 있다. 원자 폭탄이 투하된 8월 6일(히로시마)과 8월 9일(나가사키시)에 원폭사망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핵무기 폐기와 세계평화 실현을 바라는 평화기념식이 거행되며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는 '세계평화 선언'을 발표한다.항구는 사람이나 물건이 왕래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이어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역할을 한다. 항구도시인 부산시와 후쿠오카시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메시지를 발신하는 한일 우호의 안내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설사 영토문제 등으로 한일 양국이 대립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해협을 넘은 두 도시마저 시민 교류를 중단시켜 초등생들도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그 정이 돈독해 지기를 바란다. 다극화시대에서 한 나라라면 안 되는 일이라도, 한일 양국이 협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8월 15일은 한국에서는 '광복절'이며 일본에서는 '패전 기념일'이다.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은 어떻게 보면 동전의 앞뒤면과 같은 운명이라 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1945년도의 하카타항(후쿠오카항의 별칭)과 부산항의 모습을 들 수 있다. 1945년부터 몇 년간 일본 등에서 모국으로 귀환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하카타항을 통해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한반도에서 귀환하는 일본인은 부산항을 통해 하카타항으로 들어왔다.부산항은 '희망의 항구'당시 한국인 귀환자들에게 신국가 건설의 관문 역할을 한 부산항은 '희망의 항구'였다. 반면 일본 귀환자들에게 부산항은 폐허의 국가로 향하는 '절망의 항구'였던 것이다.1980년대에도 일본에 한류 붐이 있었다. 조용필, 이성애 등이 부른 한국 대중 가요를 많은 일본인이 애창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당시 히트곡 중의 하나였다. 부산항을 소재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별한 남녀의 러브 스토리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부산항은 '사랑의 항구'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하카타항과 부산항을 연결하는 고속선 '비틀'이 취항함으로써 쇼핑과 먹을거리, 미용을 즐기려는 일본인들이 드나드는 부산항은 '관광의 항구'가 되었다.여기서 한 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창도 전 부산시립도서관장이다. 부산은 한국에서 최초로 공립도서관이 설립된 곳이다. 한일합방 이전의 자료를 포함해 일본어로 기록된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로 접어든 지금은 모든 도서관 자료의 공개가 당연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인이 한국 도서관에 소장된 일본어 자료를 관람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설마'라고 생각되겠지만 강한 반일 감정이 빚어 낸 결과였다.더구나 소장 자료 조사팀에 일본인을 합류시키는 일은 서울대학교, 한국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전례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문 관장은 지금까지 일본인 연구자들에게 봉쇄해 오던 자료를 전부 공개하고 소장 목록을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비록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유산일지라도 책은 인류 공통의 재산이다'라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국 국민에게 있어 '패러다임의 전환기'였다고 생각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세계 무대에 선 한국 국민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점차 '반일감정'만으로 무장된 사고 방식에도 변화를 초래했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사실과 징병제, 창씨개명, 토지수탈 등의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 하나하나의 사실의 전모를 해명하고 두 번 다시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현명한 방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역사적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실마리는 무엇인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월 15일은 '광복절'(한국)이자 '패전기념일'(일본)이다. 이 날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켜 양국이 '세계평화 공존 선언'같은 것을 도출해 세계에 강하게 어필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한국과 일본 '세계평화 공존 선언'을만약 정부 차원에서 무리가 있다면 2009년 부산시와 후쿠오카시가 우정의 해를 제정한 예가 있듯이, 부산시와 후쿠오카시가 '세계평화 공존 선언'을 먼저 선포하는 것은 어떨까? 또는 부산시와 후쿠오카시가 제안해 이미 100개 이상 맺어져 있는 한일 자매도시 간 네트워크를 연합해서 한일 양 국민에게 어필하는 것은 어떨까?그 전례로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를 들 수 있다. 원자 폭탄이 투하된 8월 6일(히로시마)과 8월 9일(나가사키시)에 원폭사망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핵무기 폐기와 세계평화 실현을 바라는 평화기념식이 거행되며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는 '세계평화 선언'을 발표한다.항구는 사람이나 물건이 왕래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이어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역할을 한다. 항구도시인 부산시와 후쿠오카시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메시지를 발신하는 한일 우호의 안내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설사 영토문제 등으로 한일 양국이 대립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해협을 넘은 두 도시마저 시민 교류를 중단시켜 초등생들도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그 정이 돈독해 지기를 바란다. 다극화시대에서 한 나라라면 안 되는 일이라도, 한일 양국이 협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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